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명 6/사회 제도 (문단 편집) ==== 군사 전통 (Military Tradition)[anchor(군사 전통)] ==== ||<-2> [[파일:Military_Tradition_(Civ6).png|width=65]][br]{{{+2 {{{#ffffff '''군사 전통'''}}}}}} || ||<-2>인간이 화합을 이루며 살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원시 시대의 수렵민들이 정착 생활을 시작했고 몽둥이 만으로는 인접 부족민들의 머리를 박살내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전쟁은 필연적으로 진화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적의 머리를 좀 더 효율적으로 강타하기 위한 군사 체계가 생겨났습니다. 처음에는 민병대 즉, 분쟁이 일어났을 때 통치자의 분부를 따랐던 '지원자'를 훈련시키는 것이 군사 체계의 전부였고, 이러한 군사 체계가 처음으로 발달한 곳은 인도였습니다. 기원전 2000년경에 아리아인들이 침략한 이후로 인더스 계곡의 여러 도시 국가는 숙련된 전사단을 유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시기에는 이집트의 구왕국에서 훈련된 의용군을 구축하여 리비아인, 누비아인, 가나안족과 여러 성가신 부족들에 대적했습니다. 중국 문명에서는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나름의 군사 체계가 확립되었습니다. 하지만 최초 형태의 '전업' 군대가 탄생한 곳은 그리스로, 정확하게는 스파르타였습니다. 스파르타에서는 소년이 7세가 되면 병영으로 들어가 고국의 군사 체계에 대한 교육을 주입 받았고, 33세가 되면 병영 생활에서 벗어나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룰 수 있었지만 '병역 의무'는 60세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로마가 몰락하자 군사 체계는 전술, 제복, 대열, 심지어는 경례법에 이르는 다양한 각종 관행까지 포괄하게 되었습니다. 로마 이후에 패권을 차지한 유럽의 강대국에서는 집단 폭력의 관행을 더욱 체계화했으며, 극동 일본의 무사도는 일본의 문화에 깊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화약과 석유로 인해 전쟁이 영광스런 모험보다는 살육의 장으로 변질되면서 모든 국가는 저마다의 군사 체계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 ||<-2><:>{{{+2 {{{#ffffff '''설명'''}}}}}}|| || 인용구 ||'''"용맹은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본인만이 아는 것이다."''' - 데이비드 핵워스 대령 '''"군사 지식의 가치를 과소평가하지는 않지만, 병사들이 맹종적으로 규칙을 고수하며 전쟁에 임한다면 그들은 실패할 것이다."''' - [[율리시스 S. 그랜트]] || || 선행 사회 제도 ||장인 정신 || || 후속 사회 제도 ||군사 훈련 || || 영감 조건 ||야만인 전초기지를 제거하십시오. || || 영감 문구 ||병사들은 야만인 전초기지에 대한 당신의 승리가 향후 이어질 무수한 공적의 시초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 || 잠금 해제 ||측면 공격 및 지원에 의한 전투력 보너스 활성화 군사 정책 카드 '''기동 훈련''': 고대/고전 시대 경기병/중기병 유닛 생산시 생산력 +50%(신권에서 기사도로 대체됨) 위인 정책 카드 '''스트라테고스''': 위대한 장군 점수 +2(초토화 작전에서 군사 조직으로 대체됨)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